[Book] 두근 두근 내 인생

Posted by on Dec 22, 2016 in Books | No Comments

김애란 지음

아름이는 17살이다. 세상이 정한 시간으로 따지면 아름이는 17년을 살고 있지만, 그는 조로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인해 곱절로 늙어간 80세의 몸에 갇혀 산다. 찬란한 젊음을 한번도 맛보지 못한채 영원한 늙음 속에서 사는 아름이의 엄마와 아빠는 지금의 아름이 나이때인 열 일곱살에 눈이 맞아 아름이를 나았고, 그로 인해 학교에서 짤렸고, 남의집 밥그릇 수까지 훤히 꾀뚜는 이웃의 속닥거림과 부모의 거센 화를 겪어내며 대책없는 부부생활을 시작한다.

책의 화자는 “나”, 즉 아름이다. 젊디 젊어 세상물정 모른 채 뱃속의 아이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열일곱살 엄마와 뱃속의 아름이는 일찍이 민감한 교감을 나눈다.

그뒤로도 어머니는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가며 어쩔 줄 몰라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내 몸은 자꾸 자라났다. 주위에선 쉴새없이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었다. 그리고 지하 벙커에서 모스부호 해독에 열중하는 병사처럼 내 주위를 감싸는 그 ‘떨림’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암호는 다음과 같았다.
‘두근두군…. 두근두근… 두근두근…’

….. 생략 …..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종종 내 꿈속에서, 어머니가 꾸는 꿈과 만나 두서없는 대화를 했다.
‘엄마….’
‘응?’
‘엄마…’
‘그래.’
‘나 자꾸 가슴이 떨려요…. 가슴이 아프도록 뛰어요…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이러다 죽을 것만 같은데…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요.’
‘아가야’
‘네?’
‘나도, 나도 그래, 가슴이 자꾸 뛰어. 가슴이 저리도록 뛰는데 멈출 수가 없어….’

젊은 것들이 빚은 아이니 어지간히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겠냐는 주변의 입발린 덕담을 뒤집고 태어난 아름이는 세살부터 늙기 시작한다. 몇번의 고비를 넘기며 17세가 되고, 그들의 젊은 부모도 아들과 함께 하루하루 성장해 나간다.

김애란의 ‘비행운’이란 책을 읽을때, 이렇게 젊은 작가가 어찌 이리 온갖 궁상맞은 이야기를 처절하게 잘도 엮어 이야기를 만들까 하며 그의 필력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이 책, 두근두근 내 인생의 앞머리를 읽을즈음 이 책도 만만치 않게 궁상맞겠다.. 이불을 킥할 준비를 하면서 읽어야겠다 생각했는데, 김애란은 나를 비웃듯 아무래야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천연덕스러운 유머로 풀어나간다. 너무 따뜻하게 그리고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나게…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있잖니, 자꾸 슬픈 노래가 좋아진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는 술 먹고 듣는 노래야. 그러니까 너도 어른이 되면 발라드는 무조건 술 마시고 들어라, 알았지?
“네, 아빠.”
나는 얼마 안 남은 이를 드러내며 상긋 웃었다.
“아빠.”
“엉?”
“지금 슬퍼요?”
“응.”
“나 때문에 그래요?”
“응.”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건,”
“네.”
“흔치 않는 일이니까……”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아빠?”
“응?”
“전 이미 아이인걸요.”
“그래, 그렇지…..”

못배우고, 대책없고, 무능하지만 시리도록 따뜻한 엄마와 아빠에게 줄 선물로 아름이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 친구가 없는 아름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문은 책이였다.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읽는 아름이가 어느날 부모님의 이야기를 글로 엮어야겠다 생각하고 착수한 첫번째 행로는 부모님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고 느낀 점을 적는 것이였고, 백일된 아름이를 안고 찍은 십대 부모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름이는 생각한다… 부모는 왜 아무리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가질까?’ 였고… 옆집 친구(?)할아버지가 그의 더 늙은 90대 아버지에게 아이처럼 혼나는 모습을 보며 ‘자식은 왜 아무리 늙어도 자식의 얼굴을 가질까?’ 였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아름이의 몸은 급히 늙어갔고, 한쪽 눈의 시력을 상실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다. 병원비 마련을 위해 TV 출연을 결정한다. 엄마와 아빠는 동정을 팔아 치료비를 마련하는것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현실은 그 방법외에는 아무른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TV 이웃에게 희망을이라는 프로그램의 피디와 작가와 처음 만나 인터뷰를 하는 날..

“시작할까?”
“네.”
승찬 아저씨의 눈짓과 함께 작가 누나가 가벼운 말로 이야기를 풀었다.
“아까 어머님이 그러시는데, 아름이 책 좋아한다며?”
“네.”
“무슨 책 좋아해?”
“그냥 책이면 다 좋아요.”
“그래?”
“네, 저는 마음보다 몸이 빨리 자라서, 그 속도를 따라가려면 마음도 빨리빨리 키워놓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중략….
“그럼 우리한테도 하나 소개해줘볼래?”
“어…… 뭐가 있더라? 아, 얼마 전에 본 시집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한번에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충분히 좋은 일’.”
“음, 그리고?”
“또….. ‘한꺼번에 한 사람이 될수 없다는 건 조금 슬픈 일’ 이란 표현도요.”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인데 내 몸이 너무 빨리 늙어 억울할때마다 허탈하게 쓰는 유머가 있다. 마음은 소녀시대인데 몸은 이미자야… 마음은 지드래곤인데 몸은 나훈아야…

나는, 찬바람이 부는 가을 부터 봄바람이 찾아오기 전까지 유난히 나이가 드는것에 민감해진다. 거울도 자주 들여다 보고 내가 작년보다 얼마나 더 늙었는지 가늠하기 위해 철지난 사진도 꺼내서 비교해본다.

여자가 늙는것을 죄로 여기는 이 사회를 비난한 마돈나의 연설이 뼈속까지 파고들고, 타인의 시선과 지나친 배려, 무시하는 태도를 통해서 나이가 듦을 인식한다는 어느 패미니스트의 깨달음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요즘 이 책은 내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시간이라는 말에 화를 내지도, 억울해하지도 않는 아름이와 그의 부모를 통해 철없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무모한 짓을 못하게 된 따분한 위치와, 겪지 않아도 결론이 훤히 보이는 거추장스러운 현명함과 젊게 입어도 너무 나이들게 입어도 뭘 입어도 사춘기 중학생처럼 못나 보이는 인생의 과도기가 너무나 큰 형벌같이 무겁기만 했다.

나보다 더 늙은 사람을 보고 위로 받고 금방 뒤돌아서 나보다 젊은 사람을 보자마자 허탈해 할 계란껍칠 처럼 얇디얇은 마음은 몇살이 되면 포기하듯 견고해질까?

십년전에도 지금의 내 나이를 경멸했을텐데, 10년 후에 너무나도 부러워할 지금의 내 나이를 내가 지금 사랑하지 않으면 언제 사랑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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