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3 Menorca

그 절벽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벼랑 끝에서 내려다본 검푸른 지중해와 꿈 꾸듯 한 울렁거림은 생생히 기억난다.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크고 가장 깊었던 그 바다는 너무나도 초현실적인 나머지 마치 죽기위해 뛰어든다해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 살아나올 거 같은 느낌을 준다.
아니, 살아나온다기보다는 원래 나라는 존재가 시작된 심연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 한 착각.

46억 년 전 혼돈이 일고, 무질서하게 땅이 솟아오르고, 넓은 대지에 물이 차고, 생명의 씨들이 바람을 타고 곳곳에 터를 내리는 광경을 벼랑 끝에서 생각한다. 누구든 그 자리에 서면 나라는 존재가 허망하리만큼 짧은 역사와 굴곡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 돌풍을 동반한 바다가 순식간에 나를 삼킬지라도 이 세계의 질량에 한치도 영향을 주지 못할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리라.

수직의 절벽 주변에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말뚝도 안전망도 경고문구도 지도팻말도 없다. 어설프게 친절한 휴머니즘을 거부한다.
절벽과 바다는 준비된 사람들만 맞이하고자 한다. 자연을 범접하려거든 겸허하고 준비되어 있으라라는 암묵적 경고와 같다.
자연과 인간사이 세련된 합의가 이루어졌다.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여 마치 커다란 호수와 같은 지중해는, 땅의 한가운데, 지구의 한가운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래전 여러 나라는 그들만의 이름으로 지중해를 불렀다. 로마인들은 우리 바다(Mare Nostrum), 터키어에서는 하얀 바다(Akdeniz)로, 성서에서는 뒤쪽 바다로…
무수히 다른 이야기와 시간을 삼키며 지중해의 깊이는 수억 년 동안 조금씩 깊어졌으리라.

비옥한 바다.
의미가 맞던 틀리던 바다를 보는 내내 터질듯한 생명력과 영원성이 ‘비옥한 바다’라는 표현으로 입속에서 맴돌았다.
지중해가 품은 햇빛과 바람은 삼위일체와 같이 분리되어 존재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 우주를 주관하는 거대한 손을 신이라 부른다면, 나는 신이 뿌린 작은 씨앗일 테다.
나는 바람을 타고 내가 사는 지금 이곳으로 날라와 땅에 묻혀 잎을 피웠다.
나처럼 뿌려진 세상의 다른 꽃과 나무와 함께 정원을 만들어 소소한 역할을 한다.
그들도 나도 모두 던져진 씨앗일 뿐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의미도 없어보인다.
땅 위의 각기 다른 외양과는 달리 땅 속에서는 그들과 나의 작거나 큰 뿌리가 경계없이 공존한다.
우리는 대지의 양분을 잘 배분하고, 박자를 달리한 생명들이 피고지기를 반복한다.
놀랍도록 지루하지 않는 반복이 삶을 이어준다.

바다를 바라보며 또 다시 한곳에 생각이 머문다.

나는 무엇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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